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밋첨's 평점 Rating ★★☆

 

밋첨's 코멘트 Comments

 

오랜만에 정말 여러번 밑줄치고 공감하면서 읽은 책입니다. 이 책을 쓴 김하나, 황선우 작가의 이야기를 읽는 내내, 저와 저의 짝꿍 구름이가 생각났어요. 내가 구름이라는 사람을 알게 되고, 또 함께 하게 되며 배워나가면서 느꼈던 감정이나 생각들을 이 책을 읽으며 정리할 수 있었어요. 책의 모든 내용이 좋았지만, 특히 사랑하는 사람과 다툴 때의 내용을 다뤘던 <싸움의 기술> 챕터가 특히 좋았어요.

 

책의 표현처럼, 저랑 구름이는 비슷한 점도 되게 많으면서 또 다른 점도 엄청 많아요. 비슷한 점들은 우리가 더 끈끈하게 함께 할 수 있게 만들어주고, 다른 점들은 서로의 부족한 점들을 채워주고 있어, 저는 우리의 관계에 대한 만족도가 최상급입니다. 저는 인생의 좋은 시절을 이렇게 구름이와 함께 보내고 있는 게 제 인생의 가장 큰 행운이라고 생각해요. 부부, 가족, 연인, 친구 등 본인의 일상을 이루는데 중요한 관계를 맺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적극적으로 권하고 싶은 책입니다.

 

 

밑줄 긋기 Highlights

 

이제 동거인과 같이 산 지 2년이 넘었다. 만족도는 최상급이다. 동거인은 각종 요리와 어지르기, 빨래 돌리기를 맡고 나는 설거지와 청소・정리, 빨래 개기를 맡아 집안일의 배분은 절묘한 균형을 이룬다. 밤에 자려고 누웠을 때 한집에 누군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긴장이 누그러진다. 서로의 인기척에 자연스레 잠이 깨고 집에서 매일같이 인사(잘 잤어? 어서 와. 다녀올게!)가 오가는 게 일상에 생기를 불어넣는다. 혼자 살 때 ‘정서적 체온 유지’를 위해 많은 노력이 필요했던 데 비해, 둘이 사니까 그게 자연스레 이뤄진다는 점이 좋다.

 

동남아 어느 도시나 사이판 같은 더운 섬의 공항에 도착해 밖으로 한 발 내딛을 때면 후끈하고 습한 공기가 순식간에 몸을 감싸는 그 순간을 사랑한다. 그렇게 체온이 훅 올라갈 때 느끼는 기쁨은 천진하게 달려드는 강아지를 온몸으로 껴안는 듯한 기분이다. 몇 시간의 비행 이후 펼쳐지는 전혀 다른 공기와 햇볕, 식물들과 풍경, 건축양식과 음식의 총체적인 경이로움은 각각의 요소를 따로 떼어놓는 게 무의미한, 한 덩어리로 다가오는 그곳만의 특질들이다. 사람들도 저마다 다른 온도와 습도의 기후대와 문화를 품은 다른 나라 같아서, 누군가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일은 외국을 여행하는 것처럼 흥미로운 경험을 준다.

 

다른 사람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며 같이 생활하는 일은 여러모로 가르침을 준다. 세상에는 나와 아주 다른 성향과 선택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며, 의식하지 못한 채 지내던 나의 성격과 특질의 도드라진 부분을 인식하게 된다. 그리고 가장 큰 배움은 이렇게 서로 다른 사람들끼리도 서로의 차이를 존중하며 함께 지낼 수 있다는 가능성이다.

 

비슷한 점이 사람을 서로 끌어당긴다면, 다른 점은 둘 사이의 빈 곳을 채워준다. 나와 똑같은 사람이 존재한다면 과연 함께 살기 좋은 대상이었을까? 아마 가슴속 깊이 이해하면서 진절머리를 내고 도망쳤을 것 같다. 참 다른 김하나와 함께 살면서 나는 조금은 욕심이 줄고, 얼마간 정돈되었고, 약간은 느긋해졌다(고 믿고 싶다).

 

나는 그 순간에야 내적 눈물을 흘리며 정현종 시인의 시를 온몸으로 이해했다. 사람이 온다는 건 /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 그는 / 그의 과거와 / 현재와 / 그리고 /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 정현종, 「방문객」에서

 

신비롭게도 인간은 자신을 위해서보다 다른 사람을 위해 더 부지런할 수 있는 존재다. 누군가와 함께 먹을 식사를 차린다면, 무슨 힘에선지 국이라도 하나 끓이고 더운 찬이라도 한 가지 볶게 되는 것이다.

 

가장 든든한 건 이 컨설턴트가 그 어떤 경우에도 보여주는 나에 대한 믿음이다. 내가 충분히 능력이 있고, 성실한 품성을 지녔고, 전력을 다해 스스로를 발전시키려 한다는 그런 믿음은 아주 가끔 내 자존감이 쪼그라들 때조차도 티 없이 단단해서, 계속해나갈 힘을 준다.

 

누군가와 함께 살면 나에 대해 더 잘 알게 되는 것 같다. 나와 상대의 다른 점이 더 또렷하게, 자주 콘트라스트를 이루므로. 그 다른 점을 흥미롭게 여기고 나와 상대를 있는 그대로 지켜보도록 노력하는 게 중요하겠다. 나에 대해 깨닫고 나자 오히려 동거인에 대한 이해의 폭이 더 넓어졌다. 우리가 세상을 똑같이 지각하는 게 아님을, 애초에 당신과 나의 세상이 다름을 알게 되었으므로.

 

충분한 거리를 둘 수 없기 때문에 서로 한심하고 웃기는 순간도 목격하지만 그럼에도 나에게 동거인은 여전히 멋있는 사람이다. 눈속임이 불가능할 만큼 가까이에서 삶에 대한 근면함을 보고 있기 때문이다. 역으로 내가 시간을 사용하는 방식이나 생활을 대하는 태도 역시 낱낱이 동거인에게 목격될 거라는 자각은, 너무 방만하게만 살지 않도록 나를 다잡아준다.

 

살면서 쌓이는 스트레스와 긴장, 걱정을 해소시켜주는 건 대단한 뭔가가 아니라 사소한 장난, 시시콜콜한 농담, 시답지 않은 이야기들이다. 누구나 반드시 필요한 이야기만 나누는 사이가 아니라 쓸모없고 시시한 말을 서로 털어놓을 수 있는 상대를 한 사람쯤은 갖고 싶은 것이다.

 

집 안에 존경할 만한 사람이 사는 건 잔소리쟁이가 사는 것보다 천배는 동기 부여가 된다. 그렇게 동거인 눈치가 보여 꾸역꾸역 뭔가를 하더라도 결과는 모두 내 것으로 쌓인다. 더 나아진 체력, 더 많은 성과가 나에게 더 큰 뿌듯함과 동력이 되어 돌아오는 것이다. 나는 종종 나에게 본보기가 되는 동거인의 존재 자체가 고맙다.

 

“좋을 때는 아주 좋습니다.” 결혼 생활에 대한 하루키의 말처럼, 우리도 좋을 때는 정말 좋다. 별것 아닌 농담에 웃고, 서로의 취향을 넓히는 음악을 번갈아 틀어놓은 채 바보같은 춤도 같이 추고, 기운 빠지는 하루의 끝에 나를 다독여 여전히 괜찮은 사람이라고 확인해주는 누군가를 또 만날 수 있을까 모르겠다. 사람의 인생에 그런 행운이 여러 번 찾아오기도 할까?

 


챕터 <싸움의 기술> 중

 

함께 사는 사람과 싸운다는 건 도망갈 곳이 없어진 거다. 지금까진 누구와의 갈등도 이렇게까지 깊게 제대로 해결할 필요까진 없었다면 이제 절벽을 뒤에 둔 느낌으로 최선을 다해 임해야 한다. 제대로 잘 싸워야 한다.

 

서로 습관과 규율이 다르기 때문에 부딪친다.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지 못하고 훅 넘어가서 침범하기도 한다. 하지만 다툼의 빈도가 조금씩 뜸해지긴 한다. 싸우는 상황에서 나의 가장 큰 실수는 잘잘못을 따지는 일로 받아들이고, 내 행동에 대한 해명을 하기 바빴다는 거다. 내가 어떤 이유로 그렇게 생각하고 말했는지 나의 논리를 이해시키려고 해보지만 상대방에게는 변명일 뿐이다. 화가 나고 서운한 마음을 살피고 위로해주는 게 먼저가 되었어야 한다. 싸울 때조차 나의 중심은 나에게만 있었던 거다.

 

내가 이제야 배운 싸움의 기술은 이런 것이다. 진심을 담아 빠르게 사과하기,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내 입으로 확인해서 정확하게 말하기, 상대방의 기분을 헤아려 어떨지 언급하고 공감하기.

 

함께 사는 사람, 같이 살아가야 하는 사람과의 싸움은 잊어버리기 위한 싸움이다. 삽을 들고 감정의 물길을 판 다음 잘 흘려보내기 위한 싸움이다. 제자리로 잘 돌아오기 위한 싸움이다.

 

자신의 세계에 누군가를 들이기로 결정한 이상은, 서로의 감정과 안녕을 살피고 노력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계속해서 싸우고, 곧 화해하고 다시 싸운다. 반복해서 용서했다가 또 실망하지만 여전히 큰 기대를 거는 일을 포기하지 않는다. 서로에게 계속해서 기회를 준다. 그리고 이렇게 이어지는 교전 상태가, 전혀 싸우지 않을 때의 허약한 평화보다 훨씬 건강함을 나는 안다.

 

동거인에게 가장 중요한 자질은 서로 라이프 스타일이 맞느냐 안 맞느냐보다, 공동 생활을 위해 노력할 마음이 있느냐 없느냐에 달렸을 것 같다. 그래야 갈등이 생겨도 봉합할 수 있다.

 

함께 산 지 2년쯤 지난 지금 우리는 거의 싸우지 않는다. 그동안 서로가 서서히 내려놓은 것은 상대를 컨트롤 하려는 마음이다. 대신 둘이 공통적으로 원하는 집의 모습과 상태, 또 각자가 확보하길 원하는 독립적인 시공간을 정확히 얘기하고 그것을 함께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상대를 바꾸려 드는 것은 싸움을 만들 뿐이고, 애초에 그러기란 가능하지도 않다. 둘이 함께 같은 목표를 위해 노력하는 것, 그게 바로 단체 생활에 필요한 팀 스피릿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