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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강헌님의 책 <명리>를 기반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안녕하세요! 밋첨입니다.
새해가 밝았습니다. 모두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새해가 밝은만큼, 많은 분들이 신년운세에 대해 궁금해하실 것 같은데요.
원래 저는 이러한 운세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었던 사람이었습니다. 아니, 아예 불신하고 무시했던 편이었죠. 그런데 작년 상반기, 우연히 '사주'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사주의 뿌리를 이루는 '명리학'에 대해 큰 호기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보통 하나에 꽂히면 꼭 파봐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인지라, 남들은 심심풀이로 한두번 보는 사주, 그 명리학에 대해 공부를 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한동안 제가 한동안 가장 꽂혔던 주제는 '명리학'이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예전에 한 지인으로부터 추천받았던 명리학과 관련된 책이 있어 읽어보았습니다. 바로, 강헌 선생님의 <명리>라는 책입니다.
'사주명리학'에 대해 첫번째로 올리는 글은 명리학에 대해 합리적인 의심을 품고 계시는 분들이 한번쯤 읽어보면 좋을만한 내용입니다.
바로 많은 분들이 흔히 명리학에 대해 갖는 오해 3가지입니다.
운명이란 늘 우연을 가장해서 온다. -기 드 모파상
1. 명리학은 미신인가?
동양학의 세 줄기는 명리학과 풍수지리학, 그리고 한의학입니다. 이 세 과목은 조선시대의 과거 시험에서 실용전인 분야로 분류되는 잡과 출신들인데, 각각 천(天, 시간), 지(地, 공간), 인(人) 삼재사상의 골격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이 중 한의학은 1970년대부터 제도권 안에 들어와 학문으로 인정받았지만, 사주와 풍수는 아직 미신으로 치부되는 경향이 강한 게 현실입니다.
이 세 분야는 모두 음양오행이라는 하나의 뿌리에서 비롯된 세 자식들로, 그 중 명리학은 천문을 인문으로 전환한 것으로 하늘의 이치를 인간의 운명의 이치로 해석한 분야에 해당됩니다. 인간과 인간, 인간과 우주의 관계에 대한 동아시아 문명 5,000년의 성찰이 축적된 명리학은 학계에서는 비록 불법체류자 신분이지만 오늘날 대중적 영향력은 오히려 더 커지는 아이러니를 연출하고 있습니다.
사주를 보기 위해 젊은이들이 몰리고, 그 종목도 타로나 점성술 같은 서양의 기법들까지 속속 수입되어 나날이 확대되어 가고 있습니다. 현재 그 시장 규모는 지금 6~7조 정도로 시장이 커졌다고 합니다. 사회의 불확실성이 커질수록 그 시장은 점점 더 커질 것입니다.
사회가 불확실해질수록 사람들에게 더 필요한 것은 불안에 대한 정확한 해답이 아닙니다. 그보다는 자기 자신에 대한 확인, 자신의 생각에 대한 확신을 갖는 것이 우선입니다. 우리 안에는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닙니다. 왜 그럴까요? 그 명을 잘 운용한 사람과 그 명을 잘 운용하지 못한 사람이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같은 날 태어났다면 그 질료는 같을 수 있습니다. 원국의 목, 화, 토, 금, 수라는 오행의 질료는 절대불변하지만, 우리 인간은 관계에 의해 상대적으로 결정되는 사회적 존재입니다. 지금 내 옆에 있는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내 운명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이른바 특수관계인이라고 하는 부모, 자식, 배우자, 친구, 동료 등 다양한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영향을 주고 받습니다.
명리학은 인간과 우주의 관계, 인간 그 자체의 본질에 접근하는 데 있어서 많은 혜안을 던져주는 합리적인 학문입니다. 이 말을 듣고, 명리학이 학문이냐고 반문하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만약 여기에 학문적인 합리성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수십 개의 트렌드의 탄생과 소멸이 횡행하는, 급변하는 한국 사회에서 이렇게 오랫동안 명리학이 살아남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주어진 명을 바탕으로 그것을 어떻게 잘 운용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그 해법을 찾아가는 것입니다.
2. 인간의 운명은 결정되어 있는 것인가?
동양의 명리학과 서양의 점성학은 최근까지 '인간의 운명은 결정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주류였습니다. 어차피 운명은 결정되어 있으니, 그 순리대로 사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과연 그럴까요? "그렇게 될 수 밖에 없다"는 식의 숙명론적 세계관은 태어나면서부터 신분이 정해지는 봉건시대에는 잘 어울립니다.
물론 오늘날의 우리 사회에도 여전히 경제적, 사회적인 세습 요소가 곳곳에 있습니다. 그 결과 사람들의 의식 속에는 '타고난 내 팔자가 그렇지 뭐!'라는 일종의 자학적인 패배주의가 만연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운명결정론을 방어해주는 심리적인 이유가 되었습니다. 명리학이 결정론에 오랫동안 포획된 것은 더욱 확실한 이야기에 귀가 솔깃하는 인간의 어쩔 수 없는 본성도 한몫 했습니다.
그런데 동서양의 많은 운명 관련 학문들은 이제 점차 운명결정론에서 벗어나는 추세입니다.
"운명은 운명의 주체인 자기 자신이 결정하는 것이니, 이제 우리는 그저 조언을 해줄 뿐이다. 행복할 수 있는 방법과 길을 알려주는 일종의 카운슬링 역할이 우리의 할 일이다."
그렇다면 명리학은 인간이 스스로의 문제를 극복함으로써 자신의 행복을 구축하는 방법을 어떻게 말해주고 있을까요? 명리학은 지난 1,000년간 동아시아에서 발전해온 '현세'의 철학입니다. 이 학문의 유통기한은 태어나면서 죽을 때까지입니다. 이것은 전생의 업이나 내세의 구원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중국 특유의 현실주의적 세계관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명리학은 기본적으로 "인간의 운명이 고정되거나 결정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변치 않고 말해주는 학문입니다. 명리학이 우주원리론의 뿌리가 된 **음양오행 사상에서 빌려온 가장 중요한 관점은 '변화'**입니다. 고정되고 결정된 것이 아니라 끝없이 운동하고 바뀌는 힘입니다. 그것은 바로 우주의 원리이면서 인간과 인간의 삶의 본질입니다. 움직이지 않으면 인간의 삶은 끝난 것이고, 명리학도 그 순간 끝납니다.
다시 말해, 명리학은 기본적으로 "인간과 그 삶을 이루는 많은 요소를 어떻게 조화롭게 구성할 것인가, 그 조화롭게 구성된 요소를 가지고 어떻게 해야만 인간이 가진 가치를 잘 드러낼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운명', 즉 '명을 어떻게 운영할 것인가?'에 대한 학문이 바로 명리학입니다. 이 운명을 숙명론적인 단어로 해석해선 안됩니다. '운명'이라는 말을 뜯어보면, '운'은 '운용하다, 운전하다'의 뜻입니다. 그리고 '명'은 주어진 요소들입니다. 즉, 우리가 태어나면서 우주로부터 부여받은 모든 질료의 총합을 말합니다. 우리는 태어날 때 각자 자기만의 소명을 갖고 태어납니다. 이것이 명입니다. 그 명을 키우고 발현시켜 자신의 삶 속에서 실현하는 것은 오로지 그 주체의 몫입니다. '명'과 '운'을 합친 말이 바로 '운명'이고, 이것에 대한 답을 구하고자 하는 것이 바로 '명리학'입니다.
어떻게 하면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는 세상의 질서를 파악할 것인가? 그 세상 속에서 나를 어떻게 정확하게 포지셔닝할 것인가? 지금 이 시점에서 나에게 필요한 기운은 무엇일까? 이러한 것들을 연구하는 학문이 바로 명리학입니다.
3. 좋은 사주, 나쁜 사주가 있을까?
인간과 인간의 삶, 인간의 운명이란 것은 크게 보아 우주적 요소입니다. 그럼, 우주에 좋고 나쁜 것, 우월하고 열등한 것이 존재할까요? 그럴 리 없습니다. 다만, 다른 성질들이 존재할 뿐입니다. 그 성질들은 떨어져 각자 개별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음과 양처럼, 또는 오행처럼 서로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나라는 존재와 나라는 존재의 삶이 어떤 성격을 가졌고, 그 성격에 따라 잘 맞는 것과 안 맞는 것이 있을 뿐입니다. 이것을 이해하는 것이 명리학의 출발입니다.
음과 양은 우주를 이루는 가장 중요한 원칙이자, 우주적 요소를 설명하는 첫 출발점입니다. 음과 양은 서로 대립되는 것이면서 다른 것이고, 동시에 같은 것입니다. 오행은 우주 만물을 이루는 다섯가지 기운으로, 목(木), 화(火),, 토(土), 금(金), 수(水)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우주는 대립된 요소로 구성됩니다. 남과 여, 밝음과 어둠, 시작과 끝, 불과 물, 시간과 공간, 단단함과 부드러움. 이 모든 것들이 서로 대립적인 존재라는 것, 하나가 있어야 나머지 하나도 존재할 수 있는 개념이라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양은 '명분'이고 음은 '실리'이며, 부드러움은 능히 굳셈을 제어할 수 있지만 굳셈은 부드러움을 제어할 수 없습니다. 다시 말해 양은 그 기운이 밖으로 화려하게 드러나지만 안으로 응축된 음의 시운을 당하지 못합니다.
음양을 이해하기 위해 조금 더 나아간 개념이 태극입니다. 태극은 음양이라는 개념을 입체적으로 만든 것입니다. 태극은 음과 양을 구분하지 않습니다. 태극이 가지고 있는 개념의 핵심은 양이 극에 달하면 음이 되고, 음이 극에 달하면 양이 된다는 것입니다. 양은 음으로, 음은 양으로 서로 변화하기도 하고, 서로 부딪치고 대립하며 하나로 화합하기도 하고, 새로운 개념으로 바뀌기도 합니다. 음양은 절대 고정된 것이 아니며, 대립하긴 하지만 적대적인 것은 아닙니다.
[보너스] 같은 날, 같은 공간에서, 같은 운명을 타고났다면, 그 두 사람의 삶은 같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닙니다.
왜 그럴까요? 그 명을 잘 운용한 사람과 그 명을 잘 운용하지 못한 사람이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같은 날 태어났다면 그 질료는 같을 수 있습니다. 원국의 목, 화, 토, 금, 수라는 오행의 질료는 절대불변하지만, 우리 인간은 관계에 의해 상대적으로 결정되는 사회적 존재입니다. 지금 내 옆에 있는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내 운명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이른바 특수관계인이라고 하는 부모, 자식, 배우자, 친구, 동료 등 다양한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영향을 주고 받습니다.